[랑종] 후기 - 기괴하고도 기구한 운명이여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야. - 극중 바얀 신 무당 '님'의 대사
본 영화는 가문의 대를 이어 신내림을 받아 바얀 신을 숭배해온 무당 '님'이 오랜만에 만난 조카 '밍'이 날이 갈수록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상하고 기이한 증세를 보이자 본인을 촬영하러온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함께 밍을 관찰하며 겪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 오컬트 공포 스릴러 영화입니다.
한 태국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태국 북동부 지방인 이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바얀 신을 섬기는 유능한 무당으로 소문난 '님'을 촬영하기 위해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뒤 카메라로 그녀의 일상을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유능한 무당으로서의 님의 모습을 관찰하던 어느날, 한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 님을 따라간 그녀의 고향 마을에서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평소 소문난 무당으로서의 바쁜 생활로 가족들에게 모습을 비추지 못해 좀처럼 환영 받지 못한 님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만났을때만해도 멀쩡해 보이던 자신의 조카인 '밍'이 그날밤부터 갑자기 남들에게 예민한 태도을 보이다 원인과 목적을 알 수 없는 기이한 행동까지 보이기 시작한 것인데요.
찜찜함을 가득 안은 채 잠들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마을에서 원인 모를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고 님은 어젯밤 기이한 행동을 보이던 밍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며 본인의 신당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밍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조사를 하던 중, 밍과 함께 지내는 가족들이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눈치챈 님은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촬영한 밍의 모습에서도 수상한 점이 발견되자 결국 그녀의 방까지 수색하는데요.
밍의 방에서 발견한 결정적인 증거로 인하여 밍의 기이한 행동의 원인이 자신이 경험한 피할 수 없는 바야 신의 신내림이 아닐까 의심하는 님의 모습을 보고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님과 가족과의 협의 끝에 밍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일상 생활을 카메라로 촬영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촬영하기 시작한 초반의 밍의 모습은 여느 20대 여성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기괴해지며 이제는 그녀의 일상 생활까지에도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심각해지는데요.
이를 가만히 지켜 볼 수 없었던 님은 자신의 조카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지만 밍의 기이한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이 오히려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집니다.
이제는 혼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음을 느끼고 다른 무당 동료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며 밍을 위한 퇴마 의식을 준비하는 님과 이제는 사람이 아닌 하나의 폭주한 악령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밍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가족과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이제는 피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미스터리하고 기괴한 사건의 전말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무당'이라는 뜻의 태국어인 랑종을 제목으로 한 본 영화는 태국의 샤머니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지만 무당을 중심으로 한 샤머니즘 문화는 태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하는 문화라 그에 대한 이질감이 적은 채로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게다가 국내에서는 영화보다도 예능에서 많이 사용되는 페이크 다큐 형식이라 인위적인 느낌이 들 법도 한데 무언가 익숙하면서도 더욱 현장감 가득한 분위기를 형성해주었고
여기에 듣기만 해도 느낌이 싸해지는 ost가 조화가 이루어 인물이 화면에 나오든 안나오든 그저 장면이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영화의 음산하고 공포적인 분위기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무당 가문의 신내림에 대한 대물림이라는 비극적인 요소와 이로 인해 밍의 엄마이자 님의 친언니인 '노이'를 중심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저 무당인 님에게만 의존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가족들의 믿음과 불신은 영화의 스토리에 극적인 면을 보다 돋보이게 해주었는데요.
여기에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존재해 곡성에 이어서 나홍진 감독님이 이번에도 관객들에게 미끼를 제대로 던졌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곱씹어보면 정말 복선을 엄청 드러냈구나를 느끼실 정도.. 😅)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매력은 처음보는 배우라 잘 알지도 못해 더욱 리얼하게 느껴져 공포감과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 배우들의 연기였는데요. 무엇보다도 가장 돋보인 배우는 단연코 밍 역의 나릴야 군몽콘겟이었습니다.
초반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로 관객들의 시선을 주로 끌었다면 중반부부터는 점차 악령이 되어가는 그녀의 말그대로 미친 연기는 정말 소름 그 자체였는데요.
말없이 그저 표정과 자세만으로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데 거기에 정말로 신들린듯한 난폭하고 거침없는 언행이 더해지면 초반의 그녀의 미모는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등장할때마다 이번엔 어떤 미친 모습을 보여줄까하는 불안한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이면 안그래도 높았던 몰입도가 확 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었네요. 🥶🥶
영화를 초반부터 전반적으로 주도해왔던 님 역의 싸와니 우툼마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연극으로 탄탄히 연기 내공을 쌓아온 그녀의 묵직한 연기는
무당이면서도 형사적인 면모를 보이며 겉모습만으로도 느껴지는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사건의 원인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잘 이끌었네요.
또한, 밍의 엄마이자 님의 친언니인 노이 역의 씨라이 안키띠칸의 연기도 좋았는데요. 정말 영화 내내 이기적인 면모로 짜증을 유발하고 후반부에서는 밍에 밀리지 않는 얄밉고도 소름 돋는 미친 연기로 그녀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약간 아쉬웠던 점을 말하자면 언론시사회에서부터 영화의 엄청난 공포감으로 소문나 공포 영화를 잘 보는 저 역시 이 영화의 공포 수준에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요.
냉정하게 말해서 저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기대치를 너무 높여서 그런 것 같아요.. 확실히 기자분들처럼 공포감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이 봤으면 무서웠을지도.. 😅)
일단 영화의 본격적인 공포를 향한 빌드업이 꽤 긴 편이고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 속 기괴한 모습이 주를 이뤘어서 영화의 무서움에 눈 가리고 경악하기 보다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의 기괴한 모습에 살짝 소름이 돋은 정도로 느껴졌네요. (그만큼 연기가.. 👍)
공포 수준이 [곡성]과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과 비슷한 정도로 생각되어서 확실히 공포영화 잘 못보시면 무서우실 수 있을 것 같고 영화의 잔인함과 기괴함 정도가 [미드소마] 정도라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각오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공포 수준은 살짝 기대에 못 미쳤지만 영화 상영내내 몰입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음산하고 현장감 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 그리고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악령과 신내림에 관한 반전 가득 스토리가 조화를 잘 이룬 수작이라 생각되네요.